2023 일·생활 균형 근로자 우수사례 수기 공모전 [우수상-김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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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 2023-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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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수
- 308
누구에게나 당연한 행복
올해 시월로 결혼한 지 딱 일 년이 되었다. 만 스물여섯, 또래 친구들보다 일찍 결혼한 탓에 한동안 대학 동기 모임이나 주변 지인 모임에 나가면 나에게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은 ‘결혼 준비는 어때? 하면서 힘든 건 없었어?’였다. 나 또한 처음 해보는 일인지라 1년여의 결혼 과정이 전부 쉽지 않았지만, 가장 어려운 건 단연 함께 살 집을 구하는 일이었다.
마포구에 위치한 내 직장과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남편의 직장 간에는 50km가 넘는 물리적 거리가 있었다. 어느 한 사람의 직장 가까이에 집을 마련하자니 한 사람이 너무 힘든 통근을 해야 하고, 그렇다고 주말부부를 하자니 결혼의 의미가 무색해지는데다 각자 살 집을 따로 구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한 사람이 직장을 옮기거나, 그만 두는 선택지까지 생각했다.
내가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결혼을 하더라도 어느 한 사람이 일에 있어서 희생하지 않는 것이었다. 부모님 시대만 하더라도 결혼 과정에서 어느 한 사람이 직장을 그만두는 정도의 희생은 통상적인 거였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우리 부부는 각자 다니는 직장과 하고 있는 일에서 성취를 느끼고 있었다. 하루에 여덟 시간 이상 머무르는 회사 안에서의 내 삶이 행복해야 부부로서도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렇기에 결정은 더 어려워졌다.
그 과정에서 생각보다 쉽게 문제가 풀린 것은 코로나19가 종료된 후에도 재택근무와 자율 출퇴근제를 이어간다는 우리 회사의 방침 덕분이었다. 회사에서 유연 근무 제도를 공식화하면서 남편의 직장에 좀 더 가까운 지역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직장 위치와 집 문제로 내색은 않아도 걱정하던 양가 어른들도 안심이 되었는지 크게 기뻐하셨다. 한 직장에서 근로자들을 배려해 낸 제도가 몇 사람을 기쁘게 하는 건지, 나도 회사에 큰 고마움을 느꼈다.
딱 일 년이 지난 지금, 그 사이 유연근무제도나 화상회의 등 일하는 방식은 더 안착되어 업무하는 데에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조직 내에서 내 업무적 성취는 더 커져가고 있다. 당연히 일을 하다보면 대면회의가 더 효과적일 때도 있고, 대면해야만 하는 중요한 미팅 등이 있는 날에는 아침 8시-10시 코어 출근 시간 외 시간에 사무실에 출근한다. 너무 혼잡하지 않은 대중교통을 타고 출근하는 것만으로도 일 할 수 있는 에너지를 많이 아끼게 된다. 직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산다는 이유로 동료들이 나에게 불편함을 느끼진 않을까 걱정도 되었지만, 거리에 상관없이 팀의 리더와 동료들도 업무 효율성을 위해 화상회의를 자주 열고 강원도, 제주도 등 타지로 워케이션을 떠나 업무를 하면서 서로 합을 맞춰 가다보니 이젠 그런 눈치를 보기보단 동료로서 조직 구성원으로서 어떤 성과를 낼 수 있을 지만 고민할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실제 남녀 선배들이 2년을 꽉 채워 육아휴직을 쓰거나, 사무실 안에 수유실을 만들고 더 쾌적하게 쓸 수 있도록 리모델링 공사를 한다거나 자녀의 어린이집 비용을 지원하는 보육수당의 신설 등, 이런 제도와 실제로 사용하는 이들을 보면 나도 결혼 생활 넘어 육아를 하는 워킹 맘으로서의 생활을 상상할 수 있게 된다. 조직 내에 내 이후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게 만드는 레퍼런스가 있는가도 중요한 문제인데, 선배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이런 제도를 이용해 이렇게 쓸 수 있겠구나 싶었다.
온라인을 통한 효율적 회의, 재택근무, 워케이션 등 일하는 장소를 가리지 않는 근무형태의 변화, 선택근무제, 육아휴직/가족돌봄휴가 상용화 등. 물론 모든 회사에서 이런 제도를 도입하고 모든 이의 문화로 정착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이란 걸 안다. 다만 요즘의 혼인율, 출생률 등은 모두 회사생활과 관련되어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든다. 하루의 절반 가까이를 보내는 회사 생활이 행복하지 않으면 퇴근 이후의 삶은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을 것 같다.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게 멀리 있는 것도, 일을 적게 편하게 하자는 그런 낙관적 표현도, 추상적인 것도 아니다. 직장에서는 내 일을 하면서 성취를 느끼고, 퇴근 후의 내 삶을 기대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결혼을 앞두고 내 상황을 부러워하는 친구들이나 우리 부부 이야기를 듣고 기뻐하는 어른들이 점점 사라져갔으면 좋겠다. 이런 제도와 문화 정착이 더 많은 회사에 일상화되어 일하는 이가 누리는 일과 삶의 행복이 당연한 것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