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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일·생활 균형 수기·영상·캐릭터 공모전 [최우수상-조OO]
등록일
2025-08-13
조회수
134
내용

3시에 퇴근하는 남자

 

나는 3시에 퇴근하는 남자다. 말만 들어도 부러운가? 괜찮다. 

회사에서는 부러움과 의심을 동시에 받는다. ‘얘는 왜 저렇게 일찍 가?’ 같은 눈빛. 하지만 난 흔들리지 않는다. 

왜냐면, 나는 제도를 잘 활용한 남자이기 때문이다.

 

첫 아이가 태어났을 때, 아내는 굉장히 멀쩡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당신, 애 안고는 기저귀도 못 갈 거지?” 

그 말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나는 두 손으로 아기를 안고, 발로 기저귀를 찾고 있었다. 

육아는 생각보다 물리적인 전쟁이었고, 아내는 그 전쟁터에서 고립무원의 상태였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나는 회사에 말했다.  “유연근무제 신청하고 싶습니다.”

입을 떼는 데는 용기가 필요했지만, 결과는 의외로 간단했다. 출근은 9시에서 8시로, 퇴근은 6시에서 5시로 바뀌었다.

 

하지만 여전히 아내의 눈빛은 ‘퇴근했으면 뭐하냐’는 무언의 외침이었다.

의정부에서 광화문으로 출퇴근하는 나는, 5시에 퇴근해도 집에 도착하면 6시 반이었다. 그때 이미 아내는 녹초가 된 상태.

나는 다시 고민했다. 더 빠르게, 더 정확하게, 더 육아답게.

 

그리고 꺼낸 비장의 카드.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 어린 자녀를 둔 임직원의 경우 최대 2년 동안, 일 2시간 근무를 단축할 수 있는 제도다. 

회사에서도 몇몇이 쓰긴 하지만 대부분 여성 직원들만 사용했다. ‘3시에 퇴근하는 남자’는 동화 속 존재쯤으로 여겨졌으니까. 하지만 신청했고, 허락받았다. 

마치, 눈치라는 산을 넘어, 서류라는 강을 건넌 느낌이었다.

 

이제 나는 3시에 회사를 나간다. 처음에는 진짜 나가도 되나 싶었다. 대낮에 퇴근하는 게 영 어색하기도 했다. 

광화문에서 의정부까지, 정확히 1시간 반. 지하철에서 사색하고, 졸고, 당근에서 육아 용품 검색하다 보면, 4시 반에 집에 도착한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나는 ‘출산 후 멘탈탈진 여성’과 마주친다. 아니, 마주쳤다. 이제는 다르다. 지금의 아내는 미간에 햇살이 깃든 사람이다.

나는 도착하자마자 아이를 받아 업고, 기저귀를 갈고, 젖병을 삶고, 이유식을 데운다. 처음엔 두려웠지만 지금은 아내보다 내가 나은 부분도 많다. 그렇다고 자부한다.

 

그리고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 회사에서도 나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왜냐? 3시에 가려면, 3시 전까지 다 끝내야 하니까.

회의 자료는 아침 8시 10분에 벌써 책상에 올라갔다. 보고서도 ‘오후까지 주시면 됩니다’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제출됐다.

사람들은 나를 ‘빨리 끝내는 남자’로 인식하게 됐다. 한 동료는 나에게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빨리 처리해요?”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3시에 퇴근해야 돼서요.”

그 한 마디에, 정적이 흐르고,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며칠 뒤, 회사에 이상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야, 우리도 유연근무 해볼까?”   “그 옆팀 조 과장도 육아 단축근무 했다던데?”

심지어 미혼의 후배가 이런 말을 했다. “형 보면, 애 낳는 것도 괜찮은 것 같아요.”

 

그 말을 집에 가서 아내에게 전했다. 아내는 웃다가, 조용히 말했다. “그럼 둘째를 가져볼까?”

나는 다시 웃었다. 아니, 그때 진짜 울컥했다. 그녀의 삶이 조금은 나아졌다는 걸, 내 덕분이라는 걸, 

내가 제도를 ‘신청서만 내고’ 끝낸 게 아니라 진짜로 살아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사실 회사 제도가 있다는 걸 몰랐던 건 아니다.

하지만 ‘쓸 수 있을까?’ ‘눈치 보이지 않을까?’ ‘진짜 나도 해당되나?’‘승진은 할 수 있을까?’이런 생각이 먼저였다.

그런데 해보니까, 되더라. 제도는 생각보다 가까운 데 있었다.

지금은 ‘일찍 가는 사람’에서 ‘일 빨리 끝내는 사람’으로, 그리고 ‘육아 열심히 하는 다정한 아빠’로 인정받는다.

어디서든 칭찬은 듣기 마련이다.

아내에게는 ‘고마운 남편’이 되었고, 아이에게는 ‘일찍 오는 아빠’, 회사에서는 ‘일 잘하는 직원’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 조금은 괜찮은 인간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육아기 단축근무가 없었으면? 우리는 둘째를 생각할 수 있었을까? 아내는 웃을 수 있었을까? 나는 아직도 회사에 있었을까? 

모두 아니다. 그러니 이 말을 꼭 하고 싶다.

제도는 쓰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당신도 3시에 퇴근할 수 있다.